[책]작은 '한국전쟁'들 –평화를 위한 비주얼 히스토리

[책]작은 '한국전쟁'들 –평화를 위한 비주얼 히스토리

  • 발행일: 2021.6.26/
  • 출판사: 푸른역사
  • 책 소개:

만들어진 전쟁 영웅…용초도 국군 귀환포로 집결소…

포연에 가려진 한국전쟁의 민낯을 드러내다

이 책은 한국전쟁 관련 ‘스틸사진’ 70여 장과 (푸티지)영상 캡처 사진 10장을 비롯해 만화, 포스터, 지도 등 여러 이미지 자료를 엄선해 구성한 ‘비주얼 히스토리’다. 한데 숨겨졌던 사진을 발굴해 엮은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사진병과 민간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바탕이 되긴 했다. 그러나 한국냉전학회 이사이기도 한 지은이는 작은 한국전쟁들이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들 사진의 촬영 의도, ‘캡션’의 변화, 활용 목적 등을 분석해 한국전쟁의 이면을 드러냈다.

그러기에 이 책은 국가・중앙 대신 개인・가족・지역의 시각에서, 그리고 군대 간 전투와 군인 영웅 서사를 넘어서 (비무장) 민간인과 피란민, 여성과 아이의 입장에서 전쟁의 참상과 고통, 전쟁포로의 시선과 목소리 등 전투사의 ‘사각’을 복원해내는 데 성공했다.

누가 폭도로 몰았나―제주 4・3사건과 한국적 계엄

5부 21개의 글로 구성된 책의 1부는 전쟁의 배경에 해당한다. 신탁 결정에 관한 동아일보 오보사건, 제주 4・3사건, 국회프락치사건 등 전쟁으로 내달리게 된 여러 사건들을 다루는데 주목되는 것은 제주 4・3사건의 전기가 되는 오라리 방화사건 영상이다. 지은이는 오라리 마을에 진입하는 경찰기동대의 모습을 ‘때맞춰’ 공중 촬영한 영상을 발굴해 “잔악무도한 폭도들이 마을을 습격해 방화, 살인을 저지른 만행”에 각본설을 시사한다(49쪽). 더불어 제주에 선포됐던 계엄령이 법적 조치가 없음에도 2500여 명의 민간인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됐으며 게다가 소송 기록조차 없는 사실을 지적한다(65・67쪽).

‘흥남 철수’의 영웅들은 현장에 없었다

주요 전투로 구성된 전투사를 다룬 2부에서는 ‘흥남 철수, 역사인가 선전인가’가 주목된다. 흥남부두에선 젊은 부부 사진을 화두로 “국군은 육로로 퇴각할 테니 피란민을 태워 달라” 간청했다는 김백일 소장, 송요찬 준장, 최석 준장 등이 흥남 철수가 시작된 1950년 12월 19일 이전에 이미 묵호, 삼척 등으로 철수했던 사실을 적시한다(123쪽). 또한 한국전 ‘최고의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장군의 민낯도 드러냈다. 일본판 회고록에는 포함된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근무 경력이 국내에선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그의 무용담이 시작된 다부동전투의 승리에는 “10년 동안 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을” 정도의 융단폭격으로 숱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실 역시 잊혀졌음에 주목한다(149쪽).

피란민과 국군 귀환포로들은 ‘비국민’인가

포로와 피란민, 전쟁고아와 군 ‘위안부’ 등 전쟁사에서 거의 누락된 존재들을 다룬 3, 4부는 자못 충격적이다. 휴전협정 이후 귀환한 국군 포로 7,000여 명은 전원 지체 없이 한산도 인근 용초도로 향했다. 북한군 포로수용소에서 국군 귀환포로 집결소로 바뀐 이곳에서 ‘부역자’ 색출 등을 거쳐 “사상적으로 확고한 인증을 받은 용사”로 거듭나야 했다. 갑・을・병으로 분류되는 과정에서 을종은 법에 의거해 ‘처단’되거나 ‘즉결 처형’되기도 했다(185쪽). 피란민들은 또 어땠을까. “1951년 ‘1・4후퇴’ 이후 미 8군의 피란민 유도정책에 따르면, 피란길로 허용된 도로는 몇몇으로 한정되었다. 대전 이남으로 통행하는 차량에 민간인의 탑승 자체를 금했고……”(173쪽), “김종원 평양지구 헌병사령관은 아예 소개와 피란 자체를 막았다. …… 12월 5일부터 유엔군은 평양을 적성지대로 선포했고, 이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했다.”(192쪽)

평화를 위한 역사 교육 텍스트로 다시 쓰기

휴전 이후에도 계속된 작은 전쟁들을 다룬 5부에서 지은이는 판문점, 다리, 전쟁기념관 관련 사진들과 그 관련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러면서 전쟁 사진 속 피사체의 이야기를 군사적 목적과 목적에서 해방시켜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의 텍스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묻는다. 비록 대부분의 전쟁사진은 사진병이 ‘사진작전’의 일환으로 촬영했기에 전쟁 및 체제 승리를 위해 평가받고 검열받은 것이란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지은이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숨겨진 의도와 사각死角을 찾아낸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란 희망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