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em object

거제포로수용소 민간정보교육국(CI&E) 회의 / 포로의 식사와 체육활동

이 영상은 재교육 과정에서 포로수용소 사령부에서 회의 하는 장면과 포로들의 체육 활동을 담고 있다. 영상의 특징은 포로의 재교육 중 체육 활동이 담겨 있다. 체육 활동은 제네바협약에서 인정하는 분야이지만 운동 과정에서 사상 재교육과 연관시켜 운영되었다.

video | 7분46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거제포로수용소로 들어오는 북한군 포로 / 미군의 포로수용소 내 시위 진압

이 영상은 1953년 6월 19일 거제도포로수용소 내에서 북한인민군 포로들을 호송해 오는 장면과 수용소 내에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최루탄을 쏘는 던지는 장면 등을 담고 있다. 이들은 1953년 8월 빅스위치(일반포로교환)직전에 거제도에 수용된 송환을 선택한 포로들이다. 추가 송환 직전 다른 1구역 C와 D수용동에서 포로들이 이동하고 있다. 추가로 이송된 포로들은 다른 구역에 수용되고 있다.

video | 11분02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거제포로수용소에 방문한 적십자사 인원 / 인공기 게양한 포로 수용동에 최루탄 살포

이 영상에서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 체결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공산측 전쟁포로들의 송환과 관련된 장면을 담고 있다. 특히 관련 업무를 시찰하기 위해 거제도에 방문한 적십자 인원들의 모습과 이들의 시선으로 본 거제도 수용소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video | 9분 35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미군 병사의 샤워 / 포로의 송환 여부 심사

이 영상은 1952년 6월 23일부터 24일까지 송환 여부를 확인하는 장면들이다. 유엔군사령부는 1952년 4월부터 6월 24일까지 부산과 거제도 등지에 수용된 포로들의 송환여부에 따라 수용소 재배치를 실시했다. 북한 또는 중국 송환자들은 거제도, 거제도 저구리, 제주도 국제공항 인근에 이동 재배치했다. 송환을 거부한 북한군과 대만행을 선택한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은 부산 내 가야와 서면 일대, 마산, 광주 상무대, 영천, 대구, 논산, 인천 부평, 제주도 모슬포 등지로 재배치가 이뤄졌다. 영상에는 노천에 칸막이를 친 상태에서 미군의 지시에 따라 들어간 포로가 송환과 미송환을 답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송환심사 과정에서 수용소 내에서 여러 차례 시위와 갈등 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video | 5분35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포로 감찰대 발대식 / 포로수용소 내 활동(체조, 사열연습, 경극 등)

이 영상은 1952년 2월 19일 65수용동에서 포로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포로 중 대한청소년연맹(보이스카우) 결성 장면이다. 이어서 83수용동에서 포로들이 체조하는 장면, 96수용동에서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이 연극하는 장면과 관람하는 포로들이 나온다. 또한 86수용동과 교실 장면, 64야전병원에서 의사가 부상포로들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오면 간호사(포로출신 여성)이 나온다.

video | 11분21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포로들의 거제도포로수용소 건설 현장(노동 및 취사)

이 영상은 1951 5월 14일부터 16일 사이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수용소 일대를 건설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video | 10분43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포로수용소 내 활동(도서 대출, 식사)

이 영상은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민간정보교육의 재교육 중 취미 및 예술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video | 5분04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포로수용소장 돗트 납치 사건 브리핑과 76 수용동의 모습

이 영상은 1952년 5월 7일 거제도포로수용소 소장 프란시스 도드의 납치 사건 직후 국내외 언론사들에게 브리핑하는 장면이고 76수용동 현장을 방문하는 내용이다. 수용소사령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76수용동에 감금된 도드 소장의 상황, 콜슨 준장의 각서 등을 언론사에 알리고 현장을 방문하도록 허락했다. 특히 포로수용소 소장의 납치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거제도포로수용소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video | 7분39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포로의 등록 과정(지문 찍기, 사진 촬영, 물품 배급 등)

이 영상은 포로들의 등록과정과 재교육에 이용된 각종 영화뉴스 필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기 포로등록 매뉴얼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군의 독일군과 일본군 등록 매뉴얼에서 시작되었다. 미 육군 헌병대는 1940년에 <전쟁포로 처리 현장 매뉴얼 19-40(FM 19-40)>을 중심으로 한국전쟁 초기에 사용하다가 1952년 5월 1일부터 1949년 제네바협약에 기초해 재수정했으며 11월 3일 재차 수정한 매뉴얼을 사용했다. <FM19-40>에 보면 일반적인 사항, 심문, 포획 방법, 수집 및 이동, 수용소 시설, 송환 방법 등이며 포로처리 관련 헌병중대의 담당 업무 등을 담고 있다. 헌병중대는 전쟁포로처리중대와 호송중대 등에서 담당했다. 일반적인 사항에는 포로들의 포획 직후 몸수색과 포로 소지 물품 및 문서 등을 노획하고 포로집결소로 호송하는 것을 담고 있다. 수용소는 포로집결소, 임시수용소, 정식 본 수용소로 나눠져 있다. 집결소에 들어온 포로들은 포로 번호와 이름 등을 기재한 포로 태그를 목에 걸게 한다. 이어서 포로들은 성명, 계급, 본적, 주소, 소속부대 등을 기재한 개인포로등록 카드에 인적사항을 기재한다. 본 수용소에 이송된 포로들은 소독과 각종 물품들을 지급받고 재차 기본정보 외에 지문등록, 사진촬영(정면, 좌우)에 응한다. 한국전쟁기 포로들은 18만 여명에 달해 포로송환 직전까지 포로등록을 마치지 못했다.

video | 11분35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포로수용소에서의 미 육군성 군목 보켈의 설교

이 영상은 1951년 7월 6일 한국전쟁기 민간정보교육국(Civil Information and Education Section, 약칭 CI&E)에서 기획하고 연합군최고사령부(GHQ) 71통신대대 167통신중대 소속 Helms이 포로들의 종교활동을 촬영했다. 1952년 2월 27일 미 육군 전쟁심리전국(Department of the Army office of the chief of Psychological Warfare) 준장 로버트 알렉시 맥클루어(Robert A. McClure)는 “유엔군 민간정보국의 프로그램에서 포로 레크리에이션과 운동경기 등을 포함시켜 심리전에 이용해야 한다” RG 319, Entry A1 154, Box , “Assignment of Responsibility within Department of the Army for POW Reorientation Programs”, 29 FEB 1952. 며 다양한 운동경기를 권장했다. 원래 제네바협약에서 포로들의 기본적인 운동을 명시하고 있지만 재교육이나 심리전에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포로수용소에서 종교 활동은 해럴드 보켈(1898-1975, 옥호열) 선교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보켈은 칼리포니에서 태어나 북장로교에 소속된 선교사이며 1929년 8월 그의 부인과 함께 조선 안동 등지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선교사 강제 철수에 따라 잠시 귀국한 뒤 1946년 안동선교부 재개와 교회복구 사업에 참여하고자 재방문했다. 그 뒤 그는 1950년 9월 미육군성 군목에 임명되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해 바로 전쟁포로 선교 활동에 나섰다. 10월 29일 평양 서문교회에서 활동하다가 1951년 1.4후퇴 이후 부산과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다시 군종에 복무했다. 보켈은 미군 군종사령부와 미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포로수용소 선교의 협조하게 되었다. 1951년 6월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유엔군 소속 장로교 군목 1명과 카톨릭 군목 1명, 피난민 장로교 목사 4명이 포로선교라는 명목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종만, 「한국전쟁기간 미국 북장로교회 한국선교부의 활동 – 옥호열(Harold Voelkel)선교사의 활동을 중심으로-」, 『이화사학연구』40호, 2010 참조.

video | 6분30초 |

아이템 보기
item object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되는 포로들 / 포로수용소 내 활동(목공, 빨래, 운동, 종교활동 등)

이 영상은 전쟁포로의 이송, 포로수용소 생활, 민간정보교육의 재교육 프로그램 일부를 담고 있어 전체 3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 영상 30과 32롤 01초부터 2분 12초 내에서 포로들이 제1거제도포로수용소에 수륙양용주정을 타고 부두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1951년 1월부터 거제도포로수용소는 부지 선정 작업과 구역수용소, 수용동 건설 공사에 이어졌고 미군이나 한국군 경비대 숙소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이후 부산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이송되어 왔다. 영상이 촬영된 8월 5일 시점에서도 여전히 대규모 포로 이송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용소 내외와 내부가 부두에서 수용소 사령부와 수용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주제인 포로들의 수용소 생활이 담긴 장면이다. 한 포로가 3갤런(약 11.35리터) 드럼을 절단해 빨래판으로 이용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포로들은 직접 구하기 힘든 간단한 도구들을 여러 재재로 이용해 사용하고 있었다. 수용소 사령부가 포로들에게 빨래판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미군 촬영병은 포로가 드럼통을 이용해 빨래하는 장면에 큰 관심으로 본 모양이다. 세 번째 주제인 민간정보교육에서 실시한 포로들의 재교육 장면들이다. 빨래 장면 다음으로 포로들이 운동장에서 배구나 권투, 역기 등 다양한 운동과 천막교회, 83수용동의 학교, 모형 배 만들기 등 직업교육과 사상 재교육, 종교 등 다양한 재교육을 받았다.

video | 6분16초 |

아이템 보기